180115 여한과 빙룡제군패천지무황파파파파의 행방불명 (with. 여한)



 

 

.

 

 

   훈색의 머리카락이 짚을 덮은 지붕 위로 빠끔히 솟았다. 말린 꽃잎 빛깔 같기도 한 그것은 몸을 낮추자 어깨를 타고 소리 없이 흘러내린다. 여한은 콧잔등을 한 번 짧게 찡그렸다. 작은 발이 지붕을 밟는다. 그 기척을 느낄 수 있는 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아마 고양이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그렇게 믿고 싶었다.

 

   마우웅.

 

   지붕 위의 고양이는 굉장히 여유로운 표정으로 제 밑을 지나는 우매한 인간들을 보며 비웃었다. 아니, 보통 고양이가 그러한 느낌이던가. 여한은 이제야 괜한 짓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때늦은 후회였다. 고양이는 몸을 활처럼 휘며 기지개를 켰다. 그것은 왠지 납작해진다는 표현이 어울릴 만한 장면이었다. 여한은 확실히 고양이보단 새를 더 많이 봐 왔다. 아시라의 일족이라면 그럴 만도 했다. 그것도 어린 일족이라면.

 

   “…… …….”

 

   여한은 고양이에게 숨을 죽이고 다가갔다.

 

   하지만 이 고양이는 확실히 비범한 구석이 있었다. 때마침 자신에게 다가오던 불길한 마수의 존재여부를 눈치 채고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단지 오늘따라 재수가 좋은 고양이였는지는 모르겠으나여한을 발견한 고양이는 위협적인 소리를 내며 맞은 편 지붕으로 훌쩍 뛰었다. 씨이. 여한은 미간을 좁히며 저도 고양이를 따라 지붕을 건넜다. 분명 건너려고 했는데,

 

   아쉽게도 이 어린 반인 반신의 능력은 그곳까지 닿지 못했다.

 

   여한은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건물과 건물 사이에 몸이 빠져들고 말았다. 벽을 급히 짚었음에도 미끄러진 몸이 딱 알맞게 들어갔다. 정말이지 부정할 수 없을 만큼 안성맞춤이었다. 당황한 여한이 다리를 휘저었다. 발끝이 간신히 땅에 닿는다. 움직일 수가 없다. 상당히 우습기 그지없는 상황에 부딪힌 게 틀림없었다. 팔꿈치가 떨어질 때 긁혔는지 홧홧하였다. 어떡하지. 이 굉장히 곤란한 지경에 대한 해답은 아무도 대신 해줄 이가 없었다. 눈 밑과 코가 한꺼번에 찡해지는 감각이 밀려들어왔다. 하지만 다행히 다음 순간, 자애로우신 천신께서 계획하신 바대로 즉시 타인과의 기적적인 만남이 성사되었다.

 

   “!”

 

   다만 그 자 역시 기괴한 자세로 벽과 벽의 사이에 수납된 상태였다.

 

   “여한이로구나! 나를 구하러 왔어!”

 

   아시라의 일족을 이끄는 당주는 반색했다. 여한은,

 

   “아니야, 이 바보야! 나도 끼었단 말이야! 보면 몰라?”

 

   하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또한, 그를 있는 힘껏 무시하기로 했다.

 

 

 

 

* * *

 

 

 

 

.

 

 

   사건의 발단은 이틀 전이었다.

 

   여느 때처럼 이환은 경과 함께 본당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마주치는 신관생도들과 아랑들의 손에는 먹을 것이 한손 가득 들렸다. 여한은 그것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으므로 지나치려 했다. 하필 이환의 호위인 경과 눈이 정통으로 마주치지 않았다면. 사실 경에게는 하등 잘못이 없었다. 그저 어엿한 신관인 여한을 보고 목례를 했을 뿐이었다. 어쨌든 그런 경을 발견한 이환이 부루퉁한 여한에게 성큼성큼 다가와 네 오늘은 나와 함께 하겠느냐, 하고 물었다. 여한은 볼멘소리를 했다. 싫어. 단호하게 거절당한 당주의 어깨가 대번에 팔자로 축 처지기에 여한은 하는 수 없이 길을 나섰다.

 

   그래서 어딜 가나 했더니, 아랑들의 숙소로 향하는 듯 하였다. 아랑들은 당주를 발견하고 까르르 웃으며 인사를 했다. 어서 오셔요. 경님도 오셨군요. 그리고제일 앞에 서 있던 아랑이 여한을 보고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이환이 밝은 얼굴로 여한을 소개해주었다. 여한이라 하는 신관이다. 그간 면만 익숙하였던 신관의 이름을 알게 된 기쁨에 아랑들이 박수를 쳐댔다. 여전히 입을 비죽대던 여한의 뺨이 조금은 발갛게 물들었다.

 

   “당주님, 당주님.”

 

   아랑들이 쏟아내는 이야기를 한창 들어주던 중에, 가장 어린 아랑이었던 남매가 이환에게 조심스레 다가왔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얼굴이었다. 부탁이 있습니다. 혹 부당한 일을 겪은 것이 아닌가 싶어 무슨 일이냐 묻는 이환의 얼굴이 자못 진지했다.

 

   “저희들이 돌보던 고양이가 사라졌습니다.”

 

   뭐야, 겨우 그런 거야. 때가 되면 돌아오겠지. 여한은 뒷머리를 긁적이다가 심드렁하게 하품을 하였다. 반면에 이환의 반응은 달랐다. 저런. 그거 큰일이로구나. 여한이 느끼기에 이 당주란 자는 쓸데없이 참견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아랑들의 일이나 생도들에 관한 일이라면 더욱. 일족의 어르신들의 복지에도 그만큼 신경을 쓰면 좋으련만 그쪽으로는 영 관심이 없어 보였다. 시도 때도 없이 울화통을 돋우는 데 최선을 다했던 것이다. 계속해서 가다간 아시라 일족의 노인복지 현황이 매우 형편없는 상태라는 게 민간인들에게까지 알려질 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 또한 일족의 특성으로 자리 잡을지도. 모범을 보여야 할 당주가 그 선두에 서 있으니 알 만 했다. 아마 일족 역사의 왜곡에 크게 기여하진 않을까. 빨리 이 지루한 일과를 끝내고 방에 돌아가고 싶었다.

 

   “내 찾아주마.”

 

   뭘 그렇게 자신 있게 약속하는 건데. 하마터면 그렇게 외치며 등을 내려칠 뻔 했다. 아차. 내 알 바 아니지.

 

   “머물던 곳을 떠난 고양이를 쉽게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걱정말거라. 저기 수색과 추리에 능한 탐정님이 계시거든.”

 

   라며 당주는 여한을 가리켰다.

 

   “! 고양이 탐정님!”

   “그래. 별호가 묘탐정이신 여한 신관님이시다.”

 

   정작 당사자는 금시초문이었다. 여한이 도끼눈을 뜨며 이환을 물밑에서 은밀히 공격하였으나 안타깝게도 대화는 이어졌다. 고양이의 생김새와 그 특징과 이름을 물었다. 털이 잿빛인 고양이입니다.

 

   “이름은 빙룡제군패천지무황파파파파氷龍帝君覇天地無皇波派琶擺라 하는데,”

 

   여한은 아주 잠깐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놀랍게도 청력에는 문제가 없었다. 정식 이름은 따로 있었지만 보통은 그리 부릅니다. 어린 아랑의 작명법에는 특유의 취향이 반영된 듯 했다. 정식 이름이란 것도 크게 다를 것 같지 않다는 예감이 들었다. 아랑들이 시선을 교환했다.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지만 파파파파는 전부 다른 자를 씁니다. 여한은 온화하게 중얼거렸다. 그런 거 알게 뭐냐고. 더럽게 괴악하고 길다. 본당에서는 대체 뭘 가르치는 거야.

 

   “고양이가 없어진 것은 사흘 전입니다.”

   “어제 빙룡제군패천지무황파파파파를 보았다 말하는 이가 있었습니다.”

 

   그럼 빙룡제군패천지무황파파파파가 잘 지내나 보지. 문장은 퉁명스레 끼어들었다. 이환은 고양이의 이름을 정확히 기억해 읊는 여한을 보고 속으로 감탄을 금치 못했다. 실은, 며칠 전부터 수상한 자가 고양이를 잡아들이고 있다는 소문이 돌아 더 걱정입니다. 아랑이 여한에게 다가와 손을 꼭 잡았다. 따뜻했다. 부탁이에요, 신관님. 빙룡제군패천지무황파파파파가 단지 자유와 평화를 찾아 떠난 것이라면 저희도 그를 붙잡고 싶지 않습니다. 어린 아랑에게 둘러싸인 여한은 난감한 기색이었다. 빙룡제군패천지무황파파파파으아아앙. 한 아랑이 울음을 터뜨린 것을 기점으로 몇몇 아랑이 따라 훌쩍이기 시작했다.

 

   “빙룡제군패천지무황파파파파를 찾아주세요, 묘탐정님…….”

 

   여한은 결국,

 

   “! 찾아주면 되잖아!!”

 

   하고 덜컥 약속을 하고 말았다.

 

   결국, 그렇게 고양이 빙룡제군패천지무황파파파파를 찾아 떠난 고달픈 여정이 시작되었다.

 

 

 

 

* * *

 

 

 

 

   .

 

 

   올해로 기나긴 삶을 향유한 지도 5년을 넘긴 빙룡제군패천지무황파파파파는 기분이 몹시 좋지 않았다. 엊저녁부터 웬 인간 두 마리가 뒤를 밟고 있었다. 참으로 괘씸한지고. 이 무엄한 인간들에게 본좌가 직접 가르침을 주어야겠다고 마음먹었으나 그는 미천한 인간의 말을 하지 못했다. 간극의 무저갱에서 먼저 헤어 나오는 데 성공한 인간이 무례하게도, 감히 인간 주제에 고양이를 가리켜 무어라 고함을 지르며 삿대질을 했다. 그나마 빙룡제군패천지무황파파파파를 붙잡고 있는 영광을 누리는 중인 이 인간은 비교적 유순하였다. 인간의 얼굴은 잘 가늠하지 못하는 편이지만 이쪽이 더 나이가 많아보였다.

 

   “이제 빙롱인지 빙패인지 하는 거 잡았으니까 돌아가는 거지!”

   “그래. 아랑들이 기뻐하겠구나.”

 

   이환은 고양이를 들어보았다. 찌그러진 머리통이 꽤 귀엽게 생겼다. 활짝 웃는 얼굴은 고양이의 둥근 발에 즉시 응징 당하였다. 아야. 코끝에 빨간 생채기가 생겼다. 고소하다는 듯 여한이 히죽 입꼬리를 올린다.

 

   “여한이 네가 아니었으면 찾을 길이 없었을 게다.”

 

   그래. 다 내 덕이라구. 이환이 어깨를 으쓱이는 여한의 머리를 친근하게 헤집어놓았다. 그 보답으로 정강이가 걷어차였다. 사실 저 멍청이가 빙룡제군패천지무황파파파파를 찾아 도성을 부지런히 돌아다니는 동안 여한은 여유를 즐기며 당과를 집어먹고 있었다. 그 옆을 우연찮게 빙룡제군패천지무황파파파파가 하나 더 들어갔던가가 지나쳤고, 굳이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아주 우악스럽고 맹렬한 추격전이 벌어졌으며그 바람에 작은 소동이 있었으나아무튼 결과적으로는 잘 된 일이었다.

 

문제는 너무 멀리와 버렸다는 것이다.

 

   “어쩌지.”

 

   이환은 여한을 돌아보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이곳에서 남쪽을 향해 본당이 자리하고 있었다.

 

   “곧 회정당에서 회의가 있을 텐데.”

   “어차피 한 번도 시간에 맞춰간 적 없잖아?”

 

   그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다.

 

   “저거라도 타고 가던가.”

 

   여한은 부실하기 짝이 없는 수레를 가리켰다. 반쯤은 놀리기 위해서였다. 수레는 버려진 것이 틀림없었다. 저 비루먹은 나귀와 함께. 게다가 수레바퀴에 묻은 핏자국이 심상찮게 불길해보였다. 모르긴 몰라도 끔찍한 사연이 두루마리 하나쯤은 거뜬히 나올 것 같았다. 그러나 한 일족을 이끄는 당주에게 그런 사소한 요소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거 좋은 생각이구나!”

 

   푸히힉. 이환이 다가가자 나귀가 잇몸을 만개해 천하에 드러냈다. 여한은 나귀가 사람을 비웃을 수 있다는 것은 생전 처음 알았다. 아니. 저건 웃는 거라고 하는 게 아닌가? 그 와중에 빙룡제군패천지무황파파파파가 나귀의 콧구멍을 불시에 정확히 가격하였다. 나귀는 아마도 적잖이 충격을 받은 듯 했다. 이제 나귀는 침을 흘리고 있었다.

 

   “저기 있잖아, 아무래도 걷는 게 더 빠르

   “남행으로 가는 수레이니 남행거차가 좋겠구나.”

   “당주는 사람 말을 좀 듣지 그래.”

 

   어느 새 이름도 붙였다.

 

   “저 앞까지만 타면 되지 않겠느냐.”

 

   이환은 긴 내리막길의 끝을 가리켰다. 몇 백 보는 족히 걸어가야 할 거리였다. 여한은 무심결에 갈등에 빠졌다. 저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물론, 그것은 대단히 잘못된 생각이었다.

 

 

 

 

* * *

 

 

 

 

.

 

 

   비거飛車.

 

   공중에서 사람이 타고 날아다닐 수 있는 수레를 일컫는다.

 

   여한은 사뿐히 수레에 걸터앉은 그 순간부터 자신에게 지독한 자괴감의 굴레가 씌워졌다는 것을 직감했다. 오늘 운세는 대흉이었다. 그리고 그 흉사에는 당주란 작자가 상당수 기여하고 있었다. 감히 말하건대 여한의 인생에서 일말의 도움도 되지 않는 자였다. 여한은 이환이 남행거차라고 명명한 수레의 옆 부분을 붙잡고 벽력같이 일갈했다. 내가 죽으면, 그가 붙잡고 있던 수레의 옆 부분이 깔끔하게 분리되었으므로 말은 차마 맺어지지 못하고 잘렸다.

 

 

   흔들리는 수레너머로 식은땀이 흐르고,

   제 눈물도 흐르고,

 

   곧 잃어버릴 예정인 인생도 흘렀다.

 

 

   이환의 가자! 라는 신호에 내리막길을 득달같이 폭주하던 남행거차는 침 흘리는 나귀와 함께 허공에 떠올랐다. 당연한 말이지만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없었다. 여한은 삶의 임계점을 넘어 마침내 일생일대의 위기에 봉착하였음을 깨닫고 눈앞이 캄캄해졌다. 상냥하게 웃는 여운의 얼굴이 스쳤다. 이게 바로 주마등이라는 것인가. 이따위 곳에서 당주와 사이좋게 비명횡사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

 

   당과가 부족한 삶이었다.

 

 

 

 

* * *

 

 

 

 

.

 

 

   천신과 아시라께서 보우하사 천신만고 끝에 본당으로 돌아온 당주와 여한의 몰골은 만신창이나 다름없었다.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그늘진 표정으로 말이 없었다. 마중을 나온 아랑들이 빙룡제군패천지무황파파파파를 받아 안아들었다. 그 불쌍한 고양이는 기절한 상태였다. 감사합니다! 고마워요, 묘탐정님! 야아, 얘들아. 빙룡제군패천지무황파파파파가 돌아왔어! 피곤해서 잠들었나봐. 이환과 여한은 재잘대는 아랑들을 스쳐 지나갔다. 늘어지는 발걸음이었다.

 

 

   “…… …….”

   “…… …….”

 

   침묵이 흘렀다. 머리가 텅 비어버린 감각에 여한은 흐느적대며 걸음을 옮겼다.

 

   “괜찮으냐?”

 

   이환이 물었다.

 

 

   “…… …….”

 

   여한은 대답이 없었다.

 

   그 뒤로 차올랐던 해가 저물고 있었다.

 

 

   나쁜 놈.

   이환은 나쁜 놈.

 

 

   여한에게, 가장 끔찍했던 기억을 꼽으라고 한다면 반드시 포함되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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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llill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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