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804 술 취해서 정신 탈출한 로그 (with. 파렐, 그리젤다)

 

 

   파렐은 쓰레기를 발견했다.

 

   아니, 정정하자면, 각종 쓰레기들을 모아 둔 쓰레기장 옆에 있는 사람을 발견했다. 거기서 조금 더 자세히 말하자면, 쓰레기장 옆에서 웅크리고 앉아 있는 머리 긴 남자 하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 외양은 인맥이 좁은 편인 파렐으로서도 익숙하다. 남자는 미동조차 없이 겹쳐진 폐지 위에 몸을 둥글게 말고, 그렇게 존재하고 있었다. 파렐은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가 뜬다. 그리고 접착제를 바른 듯 잘 떼어지지 않는 걸음을 움직여 그에게로 다가갔다. 어깨가 규칙적으로 오르락내리락 움직이고 있었다. 살아있네. 죽은 것은 아닌 모양이다.

 

   “…… 뭐해.”

 

   사방이 고요했다. 파렐이 쓰레기장을 지나가다가 그를 볼 수 있었던 것은 단순한 우연이었다. 시끄러운 파티가 도저히 적성에 맞지 않아 어떻게 하면 빠져나갈 수 있을지 눈치를 보던 중, 시종들이 드나드는 뒷문을 확인하고 그곳을 통해 나왔던 것이다. 불러보았지만 그는 아무런 대답이 없다. 평소라면 벌떡 일어나 아들 운운하면서 쓸데없이 반겼을 텐데. 그게 없어 아쉽다는 것은 아니었으나 조그만 의문의 씨앗 하나가 어디선가 데굴데굴 굴러와 기사의 머릿속에 심어져서 새싹을 틔웠다. 그 뿐이다. 파렐은 천천히 손을 뻗어 검고 둥근 머리에 손을 얹더니, 똑똑 두들겼다.

 

   “…… …….”

   “…… …….”

 

   다행히 미미하지만 반응이 있었다. 금색의 눈을 반 쯤 감은 그가 고개를 들었다. 매우 늘어지는 속도였다. 파렐은 그를 깨운 것으로 할 일을 다 했다는 듯 의무실 가야돼, 라는 뜬금없는 말 한마디를 남긴 채 몸을 돌렸다. 추측건대 여기서 잠들면 추워서 입이 돌아가니 의무실을 가야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툭, 하는 소리와 함께 그는 고개를 떨구고 그대로 다시 웅크렸다. 파렐은 멍한 눈으로 그것을 바라보았다. 비빗. 파렐의 어깨 위에 내내 앉아있던 작고 하얀 새가 울었다. 어떡하지. 비빗. 새는 그 물음에 간단하게 대꾸했다. 알았어. 파렐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무거운데. 새삼 그가 피로를 핑계 삼아 제 몸 위에 멋대로 체중을 실었을 때를 떠올렸다. 그래서,

 

   “이리 와.”

 

   파렐은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손 위에는 귤이 놓여 있다.

   뭐랄까, 사람이 아니라 짐승을 부르는 듯한 어조였다.

 

   “…… …….”

 

   그러나 놀랍게도, 여전히 매우 늘어지는 속도이긴 했지만 그는 파렐의 부름에 비척거리며 일어났다. 걸음이 위태롭게 휘청거렸다. 파렐은 잘했어. 하고 무료하게 칭찬을 해주었다. 그가 온기가 어린 귤을 두 손에 쥐고 고개를 두어 번 주억거린다. 가자. 흰 머리의 기사가 느릿느릿 앞서가기 시작했다. 검은 머리의 기사는 그 뒤를 착실히 따른다. 세상의 시간이 서서히 흘러가기로 마음을 먹은 건지, 아니면 두 사람의 걸음이 유달리 느린 건지 알 수 없을 만큼 주변은 한산했다. 한참을 걷다 뒤를 흘끔 돌아보니 그가 부드럽고 달고 말랑거리는 귤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귤을 괴롭히면안 돼.”

 

   그는 파렐의 지적에 남부 산 맛 좋은 귤을 가만히 응시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스?! 맙소사! 어디서 이렇게 마신거니?”

 

   파렐이 로열 글라디우스 숙소로 막 들어섰을 무렵이었다. 때마침 안에서 나오던 그리젤다와 마주쳤다. 제복이 아닌 편한 옷을 걸친 그녀는 파렐이 귤 하나로 꾀어 낸 동행자의 뺨을 두 손으로 감싸며 대번에 난감한 표정을 했다. 그는 잠자코 이리저리 살피는 대로 두며 몸을 빼거나 움직이지 않았다. 멍한 얼굴로 그리젤다를 잠자코 바라보던 파렐이 몇 박자 늦게 입을 열었다. 아빠가. 사실 그의 이름이 즉각 기억나지 않았다. 이상한 것 같은데. 파렐의 말에 그녀가 멋쩍게 웃었다. 죄송합니다, 사트레즈 경.

 

   “아무래도 단단히 취한 것 같네요.”

 

   취해? 희뿌옇게 떠오른 물음은 반향이 되어 돌아왔다. 취했다. 취한다는 건, 뭔가 마셨다는 것. 술을, 술을. . 파렐이 빠져나온 그 곳에도 그것이 많았다.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술도 많이 못 마시면서 어디서 이렇게 마신 건지. 그녀는 허리에 손을 얹고 걱정스레 한숨을 쉬었다. 내기라도 하다가 잘못 걸린 걸까제스. 네 방까지 혼자 올라갈 수 있겠니? 괜찮은 거지? 우앗. 그가 대답 대신 그리젤다를 불시에 당겨 끌어안았다. 그녀는 당황하지 않고 그를 잘 달래어 등을 토닥이고 떼어낸다. 파렐의 머리 위에 앉은 작은 새가 파다닥, 날갯짓을 했다.

 

   “방에 올라가서, 씻고, 눕는다. 취침. 제이드 라누아, 알겠지?”

 

   선생님의 말씀이야. 짐짓 엄숙한 태도였다.

 

   “사트레즈 경. 제스를 좀 부탁드려요. 저는 급하게 나가봐야 해서

 

   파렐은 종종걸음으로 멀어지는 그녀의 간곡한 부탁을 부러 거절하지 않았다. 어차피 바로 옆방이기도 했고, 오히려 지금은 정신이 멀쩡할 때처럼 매달리는 게 아니라 직접 제 발로 걷는 중이니 많이 귀찮은 편도 아니었다. 이리 와. 까지 않은 귤을 하나 꺼내 내민다. 양초로 밝힌 불에 겉이 매끄럽게 빛난다. 그는 잘 익은 귤을 받고 빈손에 쥐었다. 그리고 파렐을 따라 계단을 올라갔다. 계획 없이 무작정 시도한 것 치고는 제법 성공적인 시도였다. 귤로 사람을 낚다니. 술에 취한 것이긴 하지만.

 

   “여기. 들어가.”

 

   문 정도는 열어주었다.

 

   “침대는 저기 있어.”

 

   방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맨바닥에 그대로 누우려는 그에게 파렐이 말했다. 두 개의 귤을 양 손에 하나씩 쥐고 주저앉았던 그가 아까처럼 느릿느릿 일어나 가리킨 침대에 어떻게든 눕는다. 비빗. 비빗. 하얀 새가 그의 방을 비잉 돌았다. 어으으. 침대에 단어 그대로 철퍽, 엎어진 그가 길게 신음했다. 그럼에도 용케 귤은 쥐어짜지 않는다. 귤을 괴롭히지 말라는 말을 기억하고 있는 걸까. 바라보던 파렐이 손을 뻗어 새를 거두어들였다.

 

   잘 자. 문이 닫혔다.

 

 

*

 

 

   문이 열렸다.

 

   아침 햇살이 창밖으로 눈부시게 빛났다. 그는 아직 깨어나지 않은 듯 했다. 흰 베개 위로 검은 머리카락이 어지럽게 흐트러져 있고, 미처 벗지 못해 잔뜩 구겨진 진청색 제복이 시트에 감겨 있다. 어젯밤의 귤 두 개는 멀쩡하게 베드 테이블 옆에 얌전히 놓여 있었다. 자세는 조금 불편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고른 숨소리가 들린다. 열린 문 틈 사이로 방 안을 들여다보던 파렐은 도로 문을 닫았다.

 

   “살아있네.”

 

   , 아들은 아들 나름대로 선의를 베푼 것이었다.

 

Posted by Illill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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