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708 원래 술집 주인이랑 상점 주인이 제일 세다 (with. 미하엘)
산책은 참 기분 좋은 일이다. 이마를 무자비하게 때리는 먼지바람, 턱 밑까지 차오르는 숨, 단 몇 치로 목숨이 이승과 저승 행이 결정되는, 스릴 넘치는 순간들이 있으며, 등 뒤를 맹렬하게 쫓아오는 두어 명의 동행인들과― 또 얼굴도 모르는 남의 집 낯선 지붕 위 일지라도. 제이드 라누아는 활짝 웃었다. 저 하늘 멀리서 돌아가신 조모님이 인자한 얼굴로 당신의 굵은 지팡이를 쥐고 손짓하고 계셨다. 어서 오렴, 제스. 오늘은 볼기짝을 좀 맞아야 겠구나. 몇 번인가 훌쩍 훌쩍 뛰어 다른 집 지붕에 성공적으로 착지한 그는 정중하게 거절했다. 아니오, 할머니. 찾아뵙는 건 몇 십 년 뒤로 미루겠습니다. 부디 양해해 주시길.
“미트볼!!”
바싹 거리가 좁혀지려는 조짐에 급히 벽 뒤에 몸을 숨겼다가 달려드는 산책 동행인의 다리를 걸어 넘어뜨렸다. 동행인들은 세기의 사랑을 나누듯 서로 걸려 넘어지며 이내 코를 감싸고 바닥에 뒹굴었다. 가히 절륜한 그림이었다. 그는 방향을 잡지 못하고 휘청거리다 건물 밑으로 떨어지려는 자의 뒷덜미를 낚아채 안전하게 안쪽으로 내팽개쳤다.
“이런 이런. 자기, 발밑은 항상 조심해야지.”
그러나 은혜를 모르는 보복성 주먹이 곧장 날아들어 왔다. 쯧. 역시 그대로 둘 걸 그랬나. 간단히 피하며 중얼거렸다. 상당히 비협조적인 태도의 산책 동행인은 닿을 듯 말 듯한 검은 머리채를 붙잡으려 우악스럽게 허공을 휘저었다. 하지만 발끝으로 재빠르게 구조물들을 건너는 데 성공한 그는 건물 사이로 널린 빨랫줄을 망설임 없이 붙잡고 매달려 벌써 사뿐히 다른 건물로 넘어간 상태였다. 안타깝게도 산책 동행인, 아니― 그러니까 사지를 모조리 분리해버리겠다는 일념으로 그의 뒤를 쫓는 두 명의 사내들에게는 도저히 어림없는 방식이었다. 둘 중 하나가 분함을 이기지 못하고 목재 난간을 때려 부수자 제대로 두 동강이 난다. 그는 벽에 매달려 그들에게 히죽 웃어주었다. 이렇게 서로 간에 미소가 만발할 수 있는 참 좋은 세상이다. 건물을 오르는 중 열린 창을 통해 마주친 부인에게 여유롭게 인사까지 건네며 제이드는 건너편 건물 꼭대기에 올라 탁탁, 손을 털었다.
“파스칼님에게 잘 지내시는지 안부 전해주시죠. 그나저나 저번의 그 전설의 흑기사가 즐겨 신었다는 용가죽 장화는 아무리 봐도 쥐도마뱀 가죽이었는데…….”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서슬 퍼런 단검이 위협적으로 날아 들어와 벽에 꽂힌다.
“아, 감사합니다. 물론 저도 잘 지내고 있습니다.”
제이드는 가슴에 손을 얹으며 예의바르게 인사했다. 맞은 편 건물 위에서 씩씩대던 두 남자가 가래 끓는 목소리로 무어라 고성을 지른다. 그러거나 그는 말거나 우아하게 한 바퀴 돌며 몇 걸음 뒤로 걷다가 상대가 목이 아파 씨근덕거릴 때 쯤 건물 아래로 가볍게 뛰어내렸다.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당연하다. 평범한 일상이니까. 이 정도야 일주일에 서너 번 정도 벌어지는 산책 수준이다. 가끔 이렇게 뛰면 건강유지에도 좋다.
음음음. 기억을 맴도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사람이 한산한 뒷길을 걸었다. 가벼운 보폭을 따라 검은 머리카락이 선들 움직여 귓바퀴의 작은 장신구가 햇살을 받아 반짝였다. 금을 섞어 만들어진 그 장신구는 그의 눈동자와 똑같은 색이다. 선연한 금빛 눈동자는 그을린 피부와 대비되어 더욱 돋보였다. 특히 오늘 같이 맑은 날에. 한 편 뒤틀린 호기심의 연장선상인 재밋거리를 찾느라 그의 시선은 한가로이 부유하고 있었다.
“오! 이게 누구야― 커스터드 경!”
다소 경박한 호칭은 대낮부터 누군가의 기분을 사정없이 구겨버리기에 충분했다. 제이드는 천천히 돌아서는, 예의 ‘커스터드 경’에게 성큼성큼 다가가 섰다. 굳이 말을 섞지 않아도 대번에 북방 설원을 연상케 하는 냉각된 분위기의 미하엘 에스하르트 슐츠에게 달콤하고 부드러운 디저트의 이름은 확실히 걸맞지 않아보였다. 그럼에도 그는 미하엘을 줄창 그렇게 불러대고 있었다. 본인의 일방적인 주장에 따르면 때때로 기억력이 말린 생선 수준이라 그렇다지만―제이드 라누아는 자신의 기억력을 굳이 말린 생선에 빗대진 않았다― 재밌는 것은 호칭이 미하엘의 식단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직전 식사시간에 함께했던 디저트 메뉴에 따라 호칭이 달라졌다. 이를테면 ‘브루네 쇼콜라’ 경, ‘바닐라 푸딩’ 경, ‘키르슈 휘낭시에’ 경처럼. 사소한 문제가 있다면 슬슬 주변에서도 기이한 그 룰을 눈치채간다는 것이었다. 미하엘 본인은 전혀 상관하지 않는 모양이었지만 아무래도 본명보다 그 날의 디저트 메뉴 주가가 더 올라간다는 것은 썩 환영할 만한 일은 아니다.
“제이드 라누아 경.”
직설적으로 ‘목을 따버리는’ 상상을 하며 미하엘은 나직하고 고상하게 그의 풀 네임을 불렀다. 격이 맞지 않는 자와는 정말 피치 못할 경우를 제외하고 대화를 섞기 싫었으나 끔찍하게도, 상대는 어쨌든 자신과 마찬가지로 동등한 신분의 기사였다. 함께 길러 온 엄격한 기준에 의해, 고결한 기품이 흘러넘치는 성정에 따라, 가급적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은 저지르고 싶지 않았다. 굳이 상대의 수준에 맞춰 자신의 수준을 낮출 필요도 없었다. 미하엘은 웃음기가 가득한 시선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했다. 하늘빛으로 푸른 눈동자가 거울처럼 상을 비춘다.
“오늘따라 날씨가 좋은데요. 경께서는 어딜 가시나 봅니다.”
“예.”
“오! 약속이 있으십니까? 아니면 산책?”
무어라 대답하려던 미하엘의 입술이 일자로 다물렸다. 동시에 눈이 가늘어진다. 눈을 둥그렇게 떴던 그는 아차, 싶어 민망하게 웃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캐물었나요― 커스터드 경. 참 새삼스런 소리였다.
“아니면, 디저트 드시러 가시는 겁니까?”
“…… …….”
와하하하. 미하엘은 조용히 검집에 손을 올리고 일순간 진지하게 이 자리에서 검을 뽑아도 되는지를 고민했다. 이미 여러 번 묵인해 준 전적이 있었다. 단 한 번이면 끝날 것 같았다. 한 번에 끝나지 않더라도 손가락 하나 정도는 무방할 것 같았다. 이 자도 기사인 이상 본인의 무례에 책임을 질 줄은 알겠지.
그러나 고고한 살의가 담긴 아우라가 무색하게 순서를 무시하고 앞서 끼어드는 무뢰한들이 있었다. 멀리서부터 정확히 이쪽을 향해 고함을 지르며 달려오는 그들의 기세가 흉악하기 그지없었다. 성 하나 정도는 쉽게 전복시킬 형세다. 이놈! 네놈의 손목을 잘라 침대 맡을 밝히는 촛대로 쓸 것이다! 미하엘의 한 쪽 눈썹이 치켜 올라간다. 자동으로 그에게 시선이 갔다. 역시나 뒷머리를 긁적이는 중이었다.
“또 도망 갈 생각은 접는 게 좋을 거다, 미트볼!!”
미트볼? 어쩐지 커스터드 경이라고 잘도 갖다 붙이더니. 하, 하고 작게 비웃었다. 보나마나 펼쳐질 천박한 소란에 끼어들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미하엘은 검집에 얹은 손을 내리고 돌아섰다. 돌아서려고 했다. 등 뒤에 철썩 붙어 숨은 이에게 어깨를 잡히지만 않았다면. 대체 이 사람은 타인의 무료한 인생에 어디까지 해악을 끼치려고 하는 걸까.
“잘 들으십시오! 이 분은! 성스러운 버미어의 기사님이십니다. 순결한 아이리스와 건실무적의 야생마가 상징하는 기사단, 클로비스 왕자 전하가 기사단장으로 계시는, 앞길을 막는 자들의 피로 물들여 검붉은 깃발을 내세운, 그 이름하야― 에피니치움의 기사! 다시 말해 저 같이 선량한 백성들을 수호할 경건한 의무가 있으신 분이시죠!”
무슨 개소리야, 강제로 내세워진 미하엘은 마치 그런 표정이었다.
“당신들은 이 분의 은빛 검에 목이 달아날 것입니다! 어허! 이 분이 검을 한 번 휘두르면 바다가 반으로 갈라지고 땅이 솟으며 낮의 해가 떨어지고 밤의 달이 부서지거늘! 거기서 한 발자국이라도 더 가까이 오면……! 오, 세상에 미하엘 에스하르트 슐츠 경. 당신을 만나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그런 기적을 부려 줄 의사는 없지만 저 뻔뻔한 얼굴을 후려칠 의사는 있다. 그나저나,
“방금… 풀 네임을―”
“기사님!! 얼른 저 극악무도한 악당들을 무찔러주십시오!! 자, 정의를 구현합시다!”
정의의 구현이고 뭐고, 바짝 붙어 옆에서 시끄럽게 구는 통에 귀도 따갑고 머리도 울린다. 미하엘은 눈살을 찌푸리며 눈을 감았다. 결국 수식어만 화려한 언변 탓인지, 예상치 못한 변수의 등장 탓인지 그를 추격하던 파스칼의 부하들은 주춤거리다가 다음에 보자, 라는 싸구려 멘트만 남기고 사라져버렸다. 탐탁찮은 시선이 그가 입은 푸른 제복을 꿰뚫는다. 훨씬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흙먼지가 군데군데 묻어 있긴 했지만 왕녀가 군림하는 기사단인 로열 글라디우스를 상징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이 곳에 저 말고도 성스러운 버미어의 기사님이 한 분 더 계시는 것 같습니다만, ‘미트볼’ 경.”
흙먼지를 털어내던 미트볼 경이 씩 웃는다.
“도움을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커스터드 경! 야아, 이 은혜를 무엇으로 갚아야 할지.”
“다음부터 제게 말을 걸지 않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아하하― 농담도. 흐음…… 어디보자.”
물론 진의가 듬뿍 담긴 진담이었다. 눈치가 없는 것인지 없는 척 하는 것인지, 아랫입술을 만지작거리며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제이드는 뭔가 떠올랐다는 듯 손가락을 퉁겼다. 미하엘은 몹시 무미건조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커스터드 경, 디저트 좋아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소개시켜드리고 싶은 곳이 있습니다.”
*
그리고 보기 좋게 쫓겨났다.
“으아! 이봐,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은―”
사실 미하엘은, 조금 당황하고 말았다. 제법 큰 키의 제이드를 가볍게 번쩍 들어 상점 문 밖으로 메다꽂는 장면을 목도했다. 거구의 남자는 흐음! 하고 기합을 넣더니 허리를 감싸고 좀처럼 바닥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그를 한 번 더 어깨에 들쳐 멨다. 아니아니아니. 깜짝 놀란 그가 다급하게 남자의 등을 손바닥으로 두들겼다.
미하엘은 조용히 옆으로 비켜서서 상점의 상호명이 써있을 간판을 찾았다. 이내 문고리에 걸린 작은 분홍색 문패 하나를 발견했다. <달콤한 시간♡>. 그것이 이 상점의 이름이었다. 황소도 맨손으로 간단히 때려잡았을 법한 주인장의 분위기와는 확실히 거리가 있었다. ‘공포스러운 시간’이나 ‘몽둥이질과 공갈협박의 시간’이면 모를까. 창 너머로 고소한 버터향이 났다. 벌꿀과 섞어 녹이는 중인 것 같았다.
“그게 말이야, 저번에 그 사람들은―”
“흐음……!”
“이것 봐, 나도 피해자라고! 그 녀석들 파스칼의 부하들이야!”
“흐으으음!!”
“뭐? 거짓말? 지금 내가 거짓말 하는 것 같이 보여? 이거 참 서운한데!”
“흐음……? 으으음!!”
“그래 좋아. 알겠어. 원하는 대로 해. 그러면 날 믿을 거야?”
“…… 흐음.”
“… 쯧. 파스칼의 저택이 있는 주소를 써달라니까 써주긴 하는데, 아무리 당신이라도 조심해야 할 거야. 암스트롱.”
미하엘은 이 독특한 방식의 대화를 두고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거구의 남자가 내민 손을 붙잡고 일어난 제이드는 절뚝거리며 앓는 소리를 냈다. 살살 좀 하지 그랬어. 마침내 세 사람은 <달콤한 시간♡> 안으로 들어섰다.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디저트 상점 안에 가득했다. 티타임이 지나 당장 손님은 없는 것 같았다. 덕분에 가장 넓고 편한 좌석으로 자리를 안내받았다.
“으음.”
“…… …….”
“고마워. 앉으시죠, 커스터드 경.”
무심한 분위기와 별개로, 따뜻한 온기가 감돌았다. 거구의 남자는 두 사람이 착석하는 것을 뒤로하고 주방 안으로 들어갔다. 경, 주문하시겠어요? 제이드가 묻자 미하엘은 에클레어. 라고 간단히 답한 후 남자에게 나머지 시선을 주었다.
남자는 짙은 갈색의 머리 중앙선 외에는 전부 삭발을 하고 남은 머리를 닭 볏처럼 세운 독특한 헤어스타일로 주목을 끌었다. 또한 잘 기른 수염을 양 갈래로 땋아 작은 리본으로 마무리한 모양새였다. 풍만한 여성의 허벅지만한 팔뚝에는 사랑의 화살을 날리는 아기 천사가 매우 앙증맞게 그려져 있었다. 무엇보다 버미어에서 저보다 큰 키를 가진 자를 본 적이 없었다. 앞에 앉은 제이드보다 머리 세 개는 컸다. 세상에서 가장 우람하고 건장한 모습의 그 파티시에는 왠지 음울한 잿빛 눈으로 제 엄지손가락과 비슷한 크기의 당근―대단히 일반적인 크기다―을 사박사박 썰고 있었다. 오늘 저녁에 판매할 당근 케이크를 미리 준비하는 듯 했다.
“쉐릴 암스트롱이라고 합니다.”
“쉐릴……?”
“아하하. 예. 보기보다 섬세한 저 친구와 잘 어울리는 이름입니다.”
어딘가 여성미가 물씬 풍기는 이름이다. 미하엘은 상관하지 않았다.
“이봐, 친구. 암스트롱. 부끄러워하지 말고 인사 나누라고. 이 쪽은― 어― 그러니까―”
마침 암스트롱은 주문한 에클레어가 담긴 접시를 가져다 테이블 위에 놓았다. 허공에 손가락을 바쁘게 움직이며 말을 고르는 제이드의 미간이 좁혀진다. 그러니까, 이쪽은. 새 디저트 시식을 위해 얇은 포크를 든 미하엘이 한숨을 쉬었다.
“…… 에클레어.”
“맞아요! 에클레어 경이죠.”
이제는 아무래도 좋았다.
“…… 에클레어?”
걸걸하지만 듣기 좋은 중저음의 목소리가 남자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막 에클레어 한 조각을 입에 넣으려던 미하엘은 포크를 조금 내려놓고 제이드 경의 농담입니다, 라고 대답했다. 암스트롱은 조심스레 제이드의 옆에 끼어 앉아 미하엘을 바라보았다. 억, 하고 졸지에 벽에 가로막혀 짓눌린 그가 신음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무시했다.
“훌륭하군요.”
“…… …….”
암스트롱은 미하엘이 디저트 시식을 다 마칠 때 까지 기다렸다. 감상했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적당히 달고 은은한 초콜릿 토핑과 잘 어울리는 커스터드 크림. 부드럽게 녹으면서 그 끝이 바삭한 식감. 짧고 직설적인 호평은 첫 한 입에 결정되었다. 먹어 본 에클레어 중에 가장 돋보이는 작품이다. 귀 뒤로 넘겼던 부드러운 금빛 머리카락 몇 가닥이 흘러내렸다. 긴 속눈썹이 푸른 눈을 덮는다. 다시 에클레어 한 조각을 넣고 여닫힌 입술이 유려하게 움직였다.
포크를 든 흰 손가락이 길었다. 간간히 톡톡, 포크를 두들길 적마다 희미하게 맑은 소리가 났다. 초콜릿을 더 바를 걸 그랬나. 슈크림을 조금 더 채워 넣을 걸 그랬나. 암스트롱은 침을 꿀꺽 삼켰다. 신중하게 나뉘는 에클레어. 매끈한 글레이즈가 흐릿하게 언뜻 미하엘을 비췄다. 얼마간의 애태움 끝에 입 안으로 들어가는 디저트 조각. 슈크림을 품다 적셔진 에클레어의 속결이 섬세하다. 초콜릿이 그 모든 것을 감쌌다.
이윽고 작은 포크가 갈 길을 잃어버리고 남은 슈크림을 뜨는 순간,
“… 아름답습니다.”
오랫동안 멈췄던 남자의 심장이 덜컥 뛰고 말았다.
“…… 으음…!”
“뭐야? 왜 그래? 친구.”
제이드가 암스트롱을 어떻게든 밀어내 공간을 확보하려고 애쓰며 말했다. 부르르 진동하는 몸이 예사롭지 않았다. 미하엘은 포크를 내려놓고 조금 전의 맛을 떠올려 다시금 음미했다. 한참 만에 제대로 자세를 잡는 데 성공한 제이드가 대신 물었다.
“괜찮죠?”
끄덕끄덕. 눈을 가늘게 뜨는가 싶더니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미하엘은 인정해야 할 것은 마땅히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럼 다음에, 또 와도. 그것도 괜찮겠습니까?”
“경과 함께는 아닙니다.”
눈을 반짝이며 묻는 제이드를 단호히 잘라내며 일어섰다. 거대한 남자가 덩달아 벌떡 일어나자 테이블이 덜컥거렸다. 갑작스런 소음에 미하엘의 눈이 조금 커졌다. 다음에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카운터에 에클레어 값을 지불한 뒤 말했다. 암스트롱은 고개를 끄덕였다. 볼이 조금 빨갛다. 손도 조금 떨린다. 공손하게 손을 모으고 미하엘을 상점 앞 까지 배웅했다. 각진 어깨가 드물게 처졌다.
미하엘이 떠난 <달콤한 시간♡> 에는 약간의 침묵이 감돌았다. 암스트롱은 한껏 불량한 자세로 앉아 하품을 하는 제이드에게 다가갔다.
“…… 저 ‘엔젤’에 대해서 조금 더 말해줄 수 있나.”
제이드 라누아는 으응? 하고 멍청히 되물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별 일이 다 있네’ 라고만 생각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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