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드] 랑시

커뮤로그 2018. 1. 28. 18:19

160706 랑시

 

 


   그 애, 랑시. 성은 모른다. 아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처음부터 없었다. 그 애는 바닷가에 있는 작은 마을에서 생선을 파는 부인의 딸이었다. 위로는 오빠가 한 명 있었지만 바다에 놀러 나갔다가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아버지도 마찬가지다. 가족 이야기가 나오면 바다 근처에 온 가족이 모여 산다며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자랑을 늘어놓았다. 랑시는 그런 애였다.

 

   바싹 마른 짚들을 모아둔 것 같은 머리카락들을 대충 묶고 채도에 별 차이가 없는 얼굴 위에 자잘한 주근깨가 있는 꼬마. 바닷가의 흙이 묻어있는 맨발바닥으로 온 동네를 휘젓고 다녔다. 부인이 아무리 말려도 소용이 없었다. 그 애는 이미 마을에서 제일가는 왈가닥이었다. 눈물을 쏙 뺄 정도로 혼이 나 놓고 뒤돌아서면 달려가 흙더미에서 사내아이들과 함께 뒹굴었다.

 

   그 애에게는 부하가 하나 있었다. 친구는 절대 아니고, 부인이 귀찮은 심부름을 시키면 대신 하게 시키거나 짜증이 나는 일이 있으면 작은 주먹이나 손바닥으로 두들기는 또래의 남자애였다. 머리도, 몸도 새카만데다 키도 작고 약했다. 한 번도 랑시에게 대든 적이 없었다. 그 애는 그 남자애를 제스라고 불렀다. 원래 이름은 들어본 것 같긴 한데 기억하기 어려웠다.

 

   “, 제스.”

   “?”

 

   대장을 등지고 바닷가를 멀거니 바라보는 부하의 꼴이 영 시원찮다. 이 녀석 밥은 먹고 다니는 걸까? 그 애는 그 남자애를 늘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허접한 나무칼이라도 쥐고 또래 남자 애들 무리에 끼어 있는 것을 본적이 없었다. 목소리에 힘도 없고 항상 주눅이 들어 있는 모습이 그 애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저 두 눈만 빼고. 그 남자애의 눈은 깜깜한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구슬처럼 밝고 화려하다. 평범한 초록색 눈을 가진 그 애는, 한 번도 말하지 않았지만 그 남자애의 눈 색을 많이 부러워했다. 그리고 많이 사랑했다.

 

   “저기 봐. 마차야. 또 너희 어머니가 바쁘시겠다.”

   “그러네…….”

   “너 안 가봐도 돼?”

 

   함께 마을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언덕배기에 서서, 그 남자애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손님이 일을 마치고 방에서 나올 때 쯤 가면 될 것이다. 어차피 그 전까지는 문 밖에서 기다려야 한다. 어머니가 들어오지 못하게 막았으니까.

 

   “, . 귀족 부인이네. 예쁘다…… 저런 드레스. 나도 입어보고 싶어.”

 

   그 애의 손가락이 붉은 종이 매달린 여관 옆에 선 마차를 가리켰다. 마차에서는 풍성하게 퍼진 드레스를 입은 부인이 하인의 부축을 받으며 내렸다. 오늘은 평범한 손님이 아닌 모양이었다. 어머니에게 이것저것 따지러 온 부인일지도 몰랐다. 유흥가에선 그런 일이 가끔 있다. 남편의 뒷조사를 하러 오는 부인들, 아들의 흉을 소문내지 못하도록 입을 막기 위해 돈을 쥐어주는 부모들.

 

   “…… 넌 그런 거 안 입어도 예뻐.”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조개 주우러 가자. 엄마가 오늘 많이 주워오라고 했어. 내일부터 옆 동네 축제 시작이잖아.”

 

   작은 손이 손목을 강하게 잡고 이끌었다. 그 남자애는 멋없이 어어, 하고 휘청이다가 맨발로 앞서가는 그 애를 따라갔다. 손목이 그 애의 체온으로 달아올라 따끈했다. 웃을 듯 말 듯했던 입매가 올라간다. 기침처럼 터진 웃음은 바닷가에 도착할 때 까지 멈추지 않았다.

 

   “난 이 쪽부터 주울게. 넌 저 쪽을 주워.”

 

   그 애는 그 남자애를 조개가 조금 더 많은 반대편으로 보냈다. 그 남자애는 뭐든 형편없는 솜씨니까 그 편이 더 낫다. 사박사박. 모래가 밟히는 소리가 간지럽다. 파도를 끼얹는 바다의 가장자리에서 허리를 숙여 조개들을 주먹에 가득 채워 주웠다. 조개가 모래를 많이 먹었으면 안 되는데. 삶거나 구운 조개를 팔기 전 해감을 하는 것은 으레 그 애가 할 일이었다. 바닷바람이 덥고 습하다. 흐르는 구슬땀을 손등으로 닦았다. 이번에는 검은 조개보다 커다란 회색 조개를 몇 개 더 많이 주웠다.

 

   “! 너 뭐해!”

 

   젖은 모래 위에 앉아 꿈지럭 거리는 것이 착실하게 조개를 줍는 모양은 아니다. 그 애는 양 주먹에 쥐고 있었던 조개들을 통에 쏟아 넣고 바락 소리를 질렀다. 하여간, 제대로 하는 일이 없어. 투덜거리며 떠밀려 온 파도에 모래 부스러기를 씻어내고 있자니 옆에 그 남자애가 와서 섰다.

 

   “뭐야?”

 

   그 남자애는 쪼그려 앉아 그 애의 발목에 뭔가를 채웠다.

 

   “이게 뭔데?”

   “너 주려고…….”

 

   발찌다. 구멍 난 조개껍데기들을 제가 발목에 차고 있던 얇은 끈을 풀어 엮은 것이다. 발을 떼고 걸을 때마다 잘그락거리는, 바다의 소리가 난다. 그 애의 발목이 얕고 투명한 파도에 잠겼다. 그 남자애는 뭐가 좋은지 바보 같이 웃었다.

 

   “조개는?”

 

   그 애는 허리에 손을 얹고 다그쳤다. 눈을 둥그렇게 뜬 그 남자애가 주머니에서 모래로 범벅이 된 조개 몇 개를 넘겨주었다. 못마땅한 표정으로 그것을 받아들었다. 잘했어. 부하가 다소 부족하더라도 칭찬해주는 것은 넓은 아량을 가진 대장의 몫이다.

 

   “조개, 더 필요해?”

   “당연하지. 바보야. 넌 저기 앉아있어. 너무 느려서 그냥 나 혼자 하는 게 나을 것 같아.”

 

   조개가 반쯤 찬 통을 품에 안고 그 남자애의 등을 그늘로 떠밀었다. 그 남자애는 우물쭈물 그늘로 들어가 그 애가 조개를 줍는 바닷가를 향해 앉았다. 나무가 모여 자란 그늘 밑을 맴도는 실바람은 쨍하게 내리쬐는 햇볕보다 파도를 타는 바닷바람보다 짭짤하고 달며 시원했다. 그 애의 숙인 등 위로 멀디 먼 수평선이 겹쳤다. 하얗게 뭉친 초여름의 꽃이 둥실 피었다. 그 남자애는 그 애를 함부로 불러 세우지 않았다. 그 애가 조개를 줍다 말고 냅다 물장구를 치든 어디선가 배운 노래를 흥얼거리든 멍하니 하늘바라기를 하든 가만히 기다리며 죽 바라보기만 했다. 그게 처음부터 제가 할 일 같았다. 이 풍경에, 누군가 그려 넣은 듯한 그 애를 지켜보는 것. 랑시. 그 남자애는 그마저 바람에 섞이도록 희미하게 읊조렸다.

 

   “?”

 

   한참 만에 그 애는 귀 뒤로 머리카락을 넘기며 눈을 크게 떴다. 없어졌어. 그 남자애가 만들어 준 조개 발찌. 서둘러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보이지 않았다. 울컥하는 마음에 입술을 깨물고 발을 동동 굴렀다. 어쩌지. 그 남자애가 고개를 기웃거리며 걸어왔다.

 

   “조개한테 발 물렸어……?”

   “아니야! 바보야! …… 네가 준거잃어버렸어. 어쩌지? 찾을 수가 없어. 파도에 떠밀려 갔나봐.”

 

   그 남자애는 파도에 엎어지려던 조개가 든 통을 대신 들고 말했다.

 

   “괜찮아. 그거. 별거 아니니까…….”

   “싫어! 네가 준거잖아!”

 

   그 애의 눈에 금세 물기가 어린다. 바닷물이 튀어서도 아니고 더워서 흘린 땀도 아니었다. 처음 보는 표정에 당황한 그 남자애는 조개가 든 통을 그 애의 품에 불쑥 도로 안겨주었다. 그 애는 조개가 든 통을 껴안고 고개를 숙였다. 어깨가 들썩인다.

 

   “, 내가 찾아볼게.”

   “제스!”

 

   망설임 없이 찰박찰박, 안쪽으로 들어갔다. 바다는 그 남자애의 다리를 무겁게 물고 늘어졌다. 엉성하게 공중에 들린 팔이 갈 데 없이 흔들린다. 가라앉진 않았을 테니 근처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짙은 초록색 수면을 훑었다. 더 깊이 들어가 물이 허리까지 차올랐을 때쯤 팔이 닿을만한 거리에 둥둥 떠 있는 그것을 보았다. 우두커니 서서 자신을 보고 있는 그 애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찾았어. 왠지 그 애는 기쁘다기보다 걱정스러운 얼굴이었다.

 

   “!”

   “제스!! 제스!!”

 

   그 때, 무엇인가 강한 힘이 그 남자애를 발밑에서 끌어당겼다. 사라지기 직전 본능적으로 내뱉은 비명만이 수면 위를 비잉 맴돌았다. 눈이 따가워 뜰 수 없었다. 겨우겨우 뜬 눈이 본 것은 물로 가득 찬 어둑하고 텅 빈 공간이었다. 숨이 급격하게 차올랐다. 벗어나고 싶었다. 허우적거리며 뜨거웠던 햇살을 갈망했다. 손톱이 뺨을 긁는 것처럼 어룽진 수포가 무수히 뺨을 긁었다. 가뜩이나 숨이 막히는 목에 무엇인가가 걸리고 서툴게 감기는 것을 느꼈을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제스! 제스! 정신차려봐…… 어떡하지?”

 

   그 애는 모래밭까지 간신히 끌어온 그 남자애를 두고 어쩔 줄을 몰랐다. 썩어서 해변에 버려진 밧줄을 묶어 그 남자애를 건져내는 데 쓴 통에는 이제 조개가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숨을 쉬지도 않고 완전히 정신을 잃은 것 같아 덜컥 겁이 났다. 어디선가 본 대로 가슴에 귀를 대 보았다. 미세한 진동이 느껴졌다. 벌떡 일어나 이를 악물고 마을로 달렸다. 어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될 거야. 금방 돌아올게. 조금만 참아.

 

   잔뜩 먹었던 물을 토한 그 남자애가 눈을 뜬 것은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시간이었다. 그 남자애는 퀭한 눈으로 혼자 남겨진 모래밭 위에서 그 애를 찾았다. 랑시. 랑시. 랑시.

 

   어느덧 하늘에 별이 떴다. 그 남자애는 터덜터덜 마을로 돌아왔다. 쫓아가지 못해서 버리고 간 걸까. 내 달리기가 느려서. 아쉬운 마음에 손에 남은 발찌를 몇 번이고 만지작거렸다. 내일 만나면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못난이 주제에 찾아주겠다고 나섰다가 바다에 빠져서, 미안하다고. 그렇게 사과해야겠다. 그 남자애가 오는 길에 열매 몇 개를 따서 집으로 돌아오자 그 남자애의 어머니가 아니나 다를까 벼락같이 호통을 쳤다.

 

   “제이드! 넌 어떻게 된 게 이제야 들어오니? 꼴은 그게 뭐고?”

   “…… 죄송해요. 랑시랑 놀다가……

   “랑시? 너 오늘 랑시랑 놀았니?”

 

   그 남자애의 어머니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아까 한바탕 소란이 있었어. 랑시가 부인의 마차에 치였단다. 갑자기 달려와서 끼어들기에 채 방향을 바꿀 새도 없었지. 생선가게 하는 집도 참 안됐어. 그 남자애는 지금 어머니가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랑시는요?”

   “죽었지. 치료를 받을 새도 없었어. 말에게 세 번이나 짓밟혔으니까.”

 

   흐으이상한 소리를 내자 어머니는 손을 들어 가차 없이 그 남자애의 어린 뺨을 때렸다. 울지 마. 이런 마을에서 애 하나 죽은 게 무슨 대수니? 얼른 들어와서 손님 쓰실 목욕물이나 날라. 그 남자애는 고개를 끄덕였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차마 네, 하고 대답할 수는 없었다. 그런 기분이었다. 뭔가가 한꺼번에 통째로 뜯겨져 나간, 남긴 것 아주 없이 텅 비어버려서 무어라 말할 수 없는, 그런.

 

   그 남자애는 낡은 목욕통 앞에 앉아 솔질을 시작했다. 사각사각. 묵은 물때가 벗겨져 나갔다. 나무 목욕통이 불어 나무 겉살이 같이 벗겨졌다. 그래도 멈추지 않고 계속했다. 까칠한 솔을 꽉 쥔 손이 아팠다. 이곳에 데운 물을 길러다 채워 놓으면 된다.

 

   이제 내일부터는 그 애와 놀 수 없었다.

   다시는.

 

Posted by Illill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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