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727 휴식 (with. 파렐)
하늘이 낮고 바람이 선선한 날이다. 심록으로 물든 숲은 양털처럼 깔린 구름 아래에서 사박사박 흔들린다. 후르르. 작은 새가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날갯짓을 했다. 종종걸음을 하며 쉴 곳을 찾던 작은 새는 잿빛 둥지를 발견한다. 그 희고 부드러운 둥지는, 휴식을 취하기에 안성맞춤일 것 같다. 새는 둥지에 내려앉았다. 꾸벅. 둥지가 기울었다. 깜짝 놀라 고개를 갸웃거렸다. 꾸벅. 앞으로 기운다. 또 꾸벅. 결국 작은 새는 날아가 버리고 만다. 아주 멀리.
제이드 라누아는 커다란 나무 그늘 밑에 죽은 듯이 앉아 졸고 있는 파렐 사트레즈를 발견하고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여즉 살아있는 것으로 보이는 이유는 잠결에 머리를 계속해서 주억거렸기 때문이다. 그가 풀썩, 파렐의 앞에 주저앉았다. 풀이 들썩일 만큼 선연한 인기척에도 깨어날 기미가 없었다. 머리카락 위에 깃털 하나가 남아있다. 조심스레 떼어내 허공에 비추어본다. 틈 사이로 내리는 햇살이 눈부시다. 후우. 숨결을 불어넣어 공중에 띄운다. 둥실 떠올랐던 깃털은 춤추듯 아래를 향해 서서히 추락한다. 낙하하는 깃털을 끝까지 지켜보던 눈길이 앞에 앉은 이에게로 방향을 틀었다.
“파렐 경.”
고요한 부름. 응답이 없다. 하지만 개의치 않았다.
“저, 오늘 꿈을 꿨습니다.”
그런데 상당히 기분 나쁜 꿈이었어요. 아는 사람이 나왔거든요. 세상에. 무시무시한 할망구였습니다. 그는 상대의 의사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제멋대로 대화를 시작했다. 듣고 있어요? 꾸벅. 긍정하는 것 마냥 졸음의 무게가 벌컥 쏟아진다. 음, 역시 파렐 경은 상냥합니다. 이렇게 다른 사람의 말도 잘 들어주고. 평가도 제멋대로였다. 그에 의해 모든 게 멋대로 이루어졌다.
짹짹. 짹짹짹. 일제히 새가 노래하는 소리. 나뭇잎 사이로 부서지는 햇빛을 피해 고개를 푹 숙여 보이지 않았던 금색의 눈동자가 순간에 빛을 잃고 침잠한다.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자세를 바로하자 곧 돌아온다. 그나저나 여기서 졸고 있으면 아무도 찾지 못해서 경이 실종되었다고 신고가 들어올지도 모릅니다. 그는 파렐이 휴식을 취하기 위해 고르는 장소가 하나같이 모든 조건이 완벽하게 들어맞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방문자가 극히 드물고 조용하며 적당히 서늘하며 적당히 따스하다. 그래서 파렐을 좇으면 안식을 찾아 굳이 헤맬 필요가 없다. 아스라이 퍼지는 등나무 꽃의 향을 좇으면,
“그래도 이 아빠는 어떻게든 경을 찾을 수 있으니까 너무 걱정 마세요.”
이렇게 금방 닿을 수 있다.
그는 어깨에 메고 있었던 가방을 끌어다 뒤적였다. 원통형의 나무토막 몇 개를 꺼내 늘어놓고 저마다 다르게 뾰족한 조각칼도 꺼냈다. 톡. 나무 겉면에 의도적인 흠집을 새긴다. 이대로 새를 조각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작은 새의 부리며 눈이며 날개를 솜씨 좋게 만들어냈다. 어색한 부분은 없는지 샅샅이 살핀다. 새의 눈이 둥그레 파였다. 그리고 다른 나무토막을 집어 또다시 새를 조각한다. 미래의 어느 날엔가 반드시 멀리 날아가 버릴 새. 지금은 손 안에 쏙 들어찰 만큼 작지만, 기어코 언젠가는. 그런 새를 조각했다.
콧노래가 민들레 홀씨에 한마디씩 얹혀 어딘가로 사라진다. 나무 새는 금세 여러 마리가 모여 주변에 옹기종기 둘러앉았다. 가방에서 얇은 집게를 꺼내 그럴듯하게 빛나는 큐빅들을 눈이 있는 오목한 자리에 부여한다. 나름 섬세한 작업이었다. 방 안에서 틀어박혀 작업했다면 사정이 다르겠지만, 이곳은 햇빛이 밝아 어렵지는 않았다. 모조 시트린이나 모조 에메랄드를 붙였더니 근사한 조각품 하나가 완성된다. 괜찮은데요. 그는 제 손재주에 썩 만족했다. 소재가 소재이다 보니 정말 비싸게 팔기는 어렵겠지만 투자한 것 보다는 제법 좋은 값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화려한 미래를 향해 멋진 비상을 준비하는 새들을 잠시 내려두었다.
한편 그는 아직까지 사경을 헤매고 있는 파렐을 보며 숨죽여 웃었다. 조금 전 햇빛에 코가 간지러웠는지 무심결에 재채기를 한 번 했음에도 줄곧 이런 모습이다. 손을 뻗어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정돈해주었다. 마지막 남은 새의 눈에는 푸르스름한 진주를 붙였다. 지금으로서는 확인할 길이 없는 파렐의 눈동자와 닮은 색이다. 그리고 파렐의 머리에 올려둔다. 선물입니다. 파렐 경.
머지않아 그도 남은 것들을 정리하고 겉옷을 둘둘 말아 벤 채 근처에 누웠다. 눈을 감으면 아득한 어둠이 펼쳐진다. 이 곳 말인데, 나쁘지 않네요. 물가가 가까웠는지 희미하게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둘이 넉넉히 덮고도 남는 그늘 아래에서 고즈넉한 시간이 함께 흘러간다. 어쩌다 찾았습니까? 무의미한 질문이 될 뻔한 그 때, ―기도실이. 늦게나마 웅얼거리는 대답이 처음으로 되돌아온다. 음. 과연 우리 아들은 대단합니다. 받아쳐주는 입매가 슬쩍 올라간다.
꾸벅. 밝은 잿빛 머리가 다시 위태롭게 기운다. 날지 못하는 작은 새가 손등 위로 툭, 떨어진다. 내내 감겨있던 눈이 느릿하게 열린다. 이게 뭐더라. 뭐라고 했더라. 아직은 의식이 막연하다. 서늘히 식은 손에 새를 쥐었다. 눈꺼풀이 또 무겁다.
여름날의 낮잠은 여름날의 해를 따라 길었다. 매미가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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