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219 나비 (with. 클레멘타인)

 

 


   살던 숲에는 꽃이 드물었다. 봄과 여름이 짧은 대신에 하얀 공백이 너무나 길기 때문이었다. 시들면 볼품없는 것이 어디에 쓰겠느냐며 어깨를 으쓱거리는 이도 있었지만 아델은 꽃을 좋아하였다. 한번은 누군가 어린 형제에게 네가 생각난다며 꽃가지를 선물한 적이 있었다. 아델은 얼음을 녹인 물에 그것을 담아 두었다.

 

   그리고 덜 피었던 꽃봉오리가 만개하였을 때, 초대장을 보내지 아니하였는데도 객이 찾아들었다. 나비였다. 잠시 천막을 걷어놓은 사이에 햇빛과 함께 들어온 것일까. 이쉬는 그렇게 생각하며 손을 불룩하게 맞대어 나비를 가두었다. 틀림없이 기뻐할 것이라는, 다소 어린 생각에서였다. 나무껍질을 벗겨내 엮은 바구니에 그것을 가두었다. 하지만 나비를 다시 풀어주기 위하여 바구니를 들추었을 때, 그 안에 나비는 사라지고 없었다.

 

   갈색 날개를 가진 나비는 그만큼 작고, 마르고, 여렸다. 바구니의 틈을 비집고 나올 만큼 그러했다.

 

   그는 클레멘타인에게서 그날의 나비를 떠올렸다. 저 바싹 마른 몸에서 금방이라도 등의 살을 찢고 날개가 돋을 것 같았다. 그녀를 창살처럼 둘러싼 몇몇 인간들은 더욱 틈을 좁혔다. 이제 보니, 이 일대에서 이미 유명한 여자야. 화가 머리끝까지 난 매춘부는 클레멘타인을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돈을 줬잖아. 돈을 줬으니까, 뭐가 나빠. 사람들이 몰려들자 내내 입술을 깨물고 있었던 그녀는 턱 끝까지 물이 차오른 기분에 참지 못하고 바락 소리를 질렀다.

 

   돈을 줬다고. 내가. 고집스레 매춘부의 손목을 잡아다 억지로 펼쳤다. 돈 몇 푼이 바닥에 맥없이 떨어졌다. 이것 봐. 내가 줬다니까. 클레멘타인은 하, 하고 웃었다. 어쩐지 안에 있는 깊숙한 무언가의 덩어리를 경기를 일으키며 토악질을 하는 듯한 소리였다. 너희는 돈만 받으면 무엇이든지 하잖아. 틀려? 아니야? 그래도 내가 나빠? 그녀는 계속해서 되물었다. 정작 그녀의 물음을 제대로 맞받아치는 사람은 없었다. 손으로 입을 가리고, 눈을 흘기며, 저들끼리 무어라 이야기를 하기에 바빴다. 내가. 틀린 거냐고 묻잖아. 클레멘타인의 작은 발 하나가 신경질적으로 바닥을 콱, 굴렀다. 마지막까지.

 

   그 가시덩굴처럼 짜인 인파의 틈새로 들어와 재차 숨을 급히 몰아쉬는 클레멘타인의 어깨를 잡았다. 뭐야. . 색채가 비슷한 시선이 찰나에 공중에서 맞닿았다. 매춘부가 기다렸다는 듯이 소리쳤다. 그 여자, 아주 쫓아내버려요. 이쉬. 그는 그 말에 고개를 들었다. 가라앉은 진녹색의 눈동자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대답을 차치하고 클레멘타인을 이끌었다. 이거 놔. 클레멘타인은 거세게 팔을 휘둘렀다. 그러나 그녀가 뿌리치기에는 무거운 손이었다. 나는 잘못 없어. 나는 돈을 줬는걸. 알아? 저 여자들은 돈을 주면 무엇이든지 해아직까지 폐가 잔뜩 부풀어 고양되어있는 목소리가 떨렸다. 내가 잘못한 것은 아니잖아. 그렇지. 판다고. 그래. 뺨 팔아서, 돈 벌었네, 좋겠다. ,

 

   "이 아, 앞으로 가면 위, 위험하, 하니까. 돌아서, 가요."

 

   뻐서.

 

   "당신 이름이 뭐야."

 

   등을 떠밀린 클레멘타인이 몸을 돌려 당차게 물었다. 그는 키가 컸다. 턱을 살짝 들고 말을 걸어야 했다.

 

   "이쉬, 인데요."

 

   당신도 변하지, 그렇지. 그녀는 어깨를 들썩였다. 달빛 아래에서. 도드라진 어깨뼈 위에 앉은 환영을 보았다. 나비다.

 

 

* * *

 

 

   오늘은 사탕 가게에 가자. 솜 같은 단 것이 있다고 들었어. 내일은 다리 밑으로 가자. 거기 모여서 연주를 하는 사람들이 있대. 모레는 맛있는 크레이프와 케이크를 먹으러 갈 거야. 너도 같이 가 줘야 해. 으응. 약속. 약속이야. 이쉬. 다음 주에는 더 멀리 나가볼까. 서커스단의 젊은 무용수는 그의 넓지도 좁지도 않은 평범한 보폭에 자신의 걸음을 맞추었다. 어째서인지 자꾸만 어긋났지만 금세 빙글빙글 춤을 추듯 따라가 섰다. 이쉬. 클레멘타인이 그를 멈추게 했다. 그의 흰 머리카락 끝은 등진 금빛 햇살에 젖어있었다. 잊으면 안 돼. 약속이야. 채근하는 목소리에 감출 수 없는 투정이 묻어났다. 이쉬는 옅게 미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 사탕 가게에. 내일은, - 연주를 보러, , 모레는맛있는, , 이크."

 

   맞지? 클레멘타인은 새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음 주는 더 멀리. 이번에는 그가 고개를 끄덕인다.

 

   "리지. , 오늘은 공연, 아니야?"

   "괜찮아. 사탕 살 시간은 있어."

 

   클레멘타인이 발끝으로 덜 가공된 길을 밟았다. 그는 그녀를 보며 어린 형제를 떠올렸다. 생김새도,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은 조금 비슷했으나 거의 모든 것이 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상케 되는 것은 그녀가 마지막으로 본 형제의 또래였기 때문이고, 이런저런 어리광을 받아주는 것이 익숙했기 때문일 터다.

 

   나 붉은 사탕을 살까. 붉은 사탕을 먹으면 입술이 붉어져. 아니면, 오늘은 파란 거. 숨이 끊겨도 춤을 추는 지젤이 되어볼까. 이쉬는 뭘 좋아해? 아 참, 아무거나 잘 먹지. 이쉬는 멋쩍게 웃었다. 데네브에 속한 자들이나 랍다코스에 속한 자들이 보면 괴이하고 탐탁찮은 광경이라고 여길 것이나 지금은 어둠을 그림자 저 편으로 물릴 거대한 빛이 뜬 낮이다. 이 역시 하벨의 축복을 받은 이들에게 허락된 시간. 금일의 런던 거리는 저마다 누구나 재잘거리는 소리들로 시끄러웠다.

 

   클레멘타인은 그가 누군가의 이름을 부를 때는 말을 더듬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리지, 라는 애칭도 마찬가지였다.

 

   두 라이칸이 가까워지기 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워낙에 달랐기 때문이기도 했다. 어떤 이는 겉으로는 틀어쥐기를 소원하며 실은 다 놓아버리기를, 다른 이는 겉으로는 놓아버리기를 소원하며 실은 다 틀어쥐기를 소원했다. 표리가 부동하였으나 실은, 그런 자신을 어렴풋이 알고 있는 것만큼은 같았다.

 

   있잖아. 이쉬는 왜 내 말을 다 들어 주는 거야? 그것이 곧 다음부터 제 말을 무시하라는 뜻은 아니었다. 그는 그녀와 눈을 맞추고 웃었다. 리지를 보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어. 담백한 대꾸였다. 무엇인가 불만인 클레멘타인의 양 볼이 옅게 물들었다. 누군데. 대답은 없었다. 누구야. 날개를 접었다가 펴기를 반복하던 나비가 주위를 문득 불안하고 위태롭게 맴돌았다. 꽃줄기에 갈린 발톱을 박는 것이 아니면 부단히 날갯짓을 해야 했다. 그리하여 잡아당기는 땅을 떨쳐내고 떠오를 수 있었다. 동생. 그가 함께 한 블록을 더 걸어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내뱉은 억양에는 약간의 위화감이 느껴졌다.

 

   동생은, 예쁜 여자아이였어? 사탕가게에서 막 나온 클레멘타인의 품에는 나비의 날개처럼 알록달록한 사탕이 가득 담긴 봉지가 안겨있었다. 붉은 사탕이 한 움큼, 푸른 사탕이 한 움큼, 길게 늘어나는 태피와 누가가 조금. 반면에 도무지 정체 모를 것을 두 손 가득 집어 온어딘가의 회장님이 알면 탄식할 일이었다이쉬가 하늘을 잠깐 올려다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러다 저 혼자 푸스스 웃는다. 그 바람에 나비가 쉬이 날아올랐다. 자취에는 향내가 남았다. 나비를 눈으로 좇고 있으면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흘러가는 시간이라는 존재는 애초에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그래서 좋았다. 감정 따위를 굳이 담을 필요가 없어서.

 

   “…… …….”

 

   클레멘타인은 연홍색으로 칠한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말았다.

 

   “리지도, , 좋은 동생이라고, -생각해.”

 

   수많은 동그란 알사탕들 중에 가장 큰 것을 골라 입 안에 쑥 넣은 것도 그때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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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llill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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