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118 Greeting (with. 트리스탄)

 

 


   그에게 일용할 양식이란, 양에 비례하는 일용할 포만감을 가져다주는 것에 불과했다. 더해 맛의 미학이란, 배울 기회도 없었거니와 굳이 느낄만한 여유도 없었던 것 같다. 따라서 자고로 식사란, 무조건 많은 것이 최고였다라고, 밝은 잿빛머리를 가진 남자는 늘 생각했다. 그래서 주먹만 한 빵 조각을 떼어다 입에 물었다. 그것은 이 일대에서 가장 저렴하고, 가장 크기가 큰 빵이었다. 아직 그것의 진상을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심심한 양해를 구하고 백 보 정도 양보해 좋게 말하자면 가성비가 좋았고,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맛은 더럽게 없고, 처치곤란할만큼 크기만 거대한 놈이었다. 평범한 빵의 정의와 종류에 그것이 감히 포함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빵에 대한 지나친 모욕이었다. 존재가치가 전 인류적으로 불분명한 상황에서, 오로지 이 남자만이 그것의 존재가치를 대변해주고 있었다. 그 남자가 매일 방문하는 빵집 주인은 새벽마다 그것을 두 개씩 화덕에 넣고 정성껏 구웠다. 그것은 이름조차 없었다. 그냥 그 빵집에서 가장 큰 빵이었다. 큰 빵. 가장 큰 빵. 씹으면 엄청나게 질겼다. 가죽신을 생으로 씹어도 그렇게까지 질기진 않을 것이다. 남자에게는 전혀 문제가 되는 사안은 아니었지만. 그래서 옆벽이 깨진 화덕에서 꺼내진 두 개 중 하나는 어김없이 그의 것이었다. 언제나.

 

   그 빵집은 런던 거리의 후미진 골목에 위치해있었다. 그가 그것을 매일 아침, 그나마 빵이라는 존재가 빵이라는 존재로서 가장 신선하며 맛이 괜찮을 때 찾는 것은 아니었다. 그가 그것을 마음에 들어 하는 이유 중 하나를 더하자면 그것이 땅거미가 질 때 즈음까지 팔리지 않고 반드시, 틀림없이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그는 단 한 번도 그것의 구입을 실패한 전적이 없었다. 그만큼 빵의 맛이 흙을 스프처럼 퍼먹는 것만도 못하단 뜻이었으나, 오늘도 그는 그것을 품에 안고 거리를 걸었다. 키가 꽤 큰 편인데다 그다지 왜소한 체격도 아닌 그는 유백색에 가까운 머리색 덕에 눈에 띌 만도 하건만, 당장 건널목만 건너도 사람들은 그의 존재를 잘 눈치 채지 못하였다. 그의 발걸음은 소리가 나지 않았다. 숨을 들이고 내쉬는 것도 소리가 묻어나지 않았다. 기척의 끈을 찾기가 힘들다. 하지만 그는 종종 뜬금없이 소리 내어 불평하곤 하였다. 시끄러워, 라고. 조금 더 조용히, 소리 없이. 그 때마다 짙은 녹색 눈동자가 번득이곤 했다.

 

   그는 빵의 절반의 절반을 한꺼번에 입에 우겨넣었다. 입안에 빈 공간이 없이 꽉 들어찼다. 작은 쟁반만한 크기의 빵은 다 먹고 나면 어김없이 배가 불렀다. 포만감이 얼마나 가느냐의 문제는 또 다른 문제였으나, 일단 그는 대식가가 아니었다. 남들보다 조금 더 많이 먹을 뿐. 지출의 9할이 식비로 나간다는 것은 조금 다른 관점이다. 애초에 식비 외에 쓸 만한 것이, 악보를 사는 것과, 잉크와, , 딱 그 정도다. , 갖고 있는 옷들이 해지면 나가서 사기도 한다. 부츠는 지금 신고 있는 것의 질이 꽤 괜찮은 편이라 한 번도 사본 적이 없지만, 아무튼 외출을 했을 때 쓸데없는 시선을 받는 것은 사양이기에. 적어도 구색은 갖추자는 주의였다. 그는 알고 보면 동떨어진 생활양식을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필요에 의하면, 무엇이든 했다. 맛을 즐기는 것만 빼고. 그러니 그것을 매일 샀다. 그 끔찍하게 맛이 없는 빵 말이다. 배부르면 됐어. 남자는 아마도 그리 생각하는 듯 했다.

 

   이쉬!

   골목을 돌자마자 가슴이 훤히 드러난 화려한 옷을 입은 여인이 그를 향해 급히 달려들었다. 으어. 당황한 그는 싸구려 종이봉투가 구겨질 정도로 자신의 덜 먹은 빵을 얼른 소중히 끌어안아 지키려 했다. 여인은 그런 그에게 눈을 잠시 흘겼으나 곧 그의 뒤로 숨으며 콧김을 뿜고 있는 한 사내를 가리켰다. 한 눈에 보아도 사정을 알만 했다. 어스름이 깔린 이 거리에서 이런 치정사건은 드문 일이라고 할 수 없었다. 여자는 매음을 하는 창부였고, 사내는, 그녀의 손님이었을 것이다. 메리어트! 당신이 어떻게 내게 이럴 수 있어! 이곳에서 소란을 피우는 사람들의 래퍼토리들은 전부 놀라운 유사성을 보였다. 메리어트! 나와 함께 살기로 했잖아. 천년만년 살기로 했잖아! 그는 눈을 옆으로 굴렸다. 인간의 표현이란 가끔씩 종잡을 수가 없었다. 인간이 그 억겁의 시간동안 사는 것이 가당키나 한 것인가. 그녀는 구원자를 재촉하듯 손을 밖으로 휘저었다. 무섭고 귀찮으니 어떻게든 쫓아내라는 뜻이다. 이쉬. 어떻게 좀 해봐요. 저 사람, 정신이 나갔어. 그는 손가락이 파묻힐 만큼 숱이 많은 머리를 멋쩍게 긁적이다가 꽥꽥 소리를 지르는 사내에게 다가갔다. 넌 뭐냐. 나의 메리와 무슨 관계야! 붕 휘두르는 주먹을 단번에 잡아챘다. 그의 축 처진 눈매는 공격적인 의지가 없어보이게끔 했으나, 실상은 다르다는 듯, 사내는 그에 의해 죽 끌어당겨져나갔다가 미처 균형을 잡지 못하고 우스꽝스럽게 비틀거리다 굴러 넘어지고 말았다. 볼품없이 뻗은 사내는 상스러운 욕설을 내뱉으며 일어나 덤볐다.

 

   충만한 의지는 존경스러울 만 했으나, 정작 그는 난감함을 느꼈다.

 

 

* * *

 

  

   빵은 차츰 그의 배가 부르게 했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그는 썩어가는 의자에 앉아 테이블에 반쯤 엎드려 한 손에는 빵을 들고, 다른 한손에는 펜을 들고 음표를 그렸다. 가끔은 검은 타원을 그렸고, 또 가끔은 짧은 사선으로 대체하였다. 그것도 아니라면 마름모꼴의 검은 것을 그리고, 기둥을 얹고, 필요에 의해 꼬리를 그리거나, 그리지 않거나 하였다. 사각사각, 싸구려 잉크가 번져 자세히 본 선들은 울퉁불퉁한 굴곡이 많았다. 종이가 고급 재질이 아닌 것도 한 몫 했다. 그래도 그는 개의치 않았다. 선율은 적당히 올라갔다가, 분할되어 내려오고, , , 끊어졌다가 불완전한 종지를 맞이하였다. 시인의 시는 더 이어지지 않았다. 더 이상 그릴 수 없음을 알아채고 자신이 남긴 자취를 훑었다. 제일 윗 선율과 일부 화성을 그린 것이 다였으나 그는 새 종이를 위에 덮었다. 그리고 다른 시인의 다른 시를 떠올렸다. 적당한 것이 생각나지 않아 의미 없는 낙서를 했다. 동그라미. . 나무. 나무가 여러 개라 숲. . 그리고, 사람. 어린 사람. 사람이 아닌, 어린 나의 형제.

 

   낙서한 사람의 머리 윗부분과 쫑긋 세운 두 귀를 칠하던 그는 펜을 놓았다. 멀리서 아코디언의 바람 빠진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흥에 겨워 연주를 하는 듯 했다. 아까 근처에 웬 사람이 하나 쓰러져 있던데, 봤어? 으하하. 문 너머로 그렇게 말하는 걸걸한 소리들이 위로 사라진다. 이쉬는 저도 모르게 천장을 보았다. 용도를 알 수 없는 금속품이 하나 달려있었다. 과거에 쓰던 것이겠지. 지금보다는 화려한 조명이 이 방을 메웠었던 것 같다. 모종의 이유로 제거되었을 것이고. 포주가 종용한 것일까. 그는 하등 쓸데라고는 없는 생각을 했다. 그대로 남은 빵을 모조리 입에 쑤셔 넣었다.

 

   그러다 눈이 마주쳤다.

 

   안녕. 트리스탄이야. 리스라고 불러.

   으레 악수를 청하는 손이 따라오는 편이었지만 자신을 소개한 남자는 서너 걸음 쯤 떨어진 곳에서 머물렀다. 이쉬는 짧은 순간동안,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사실 네가 편하다면 뭐라 부르든 나는 상관없어, 그가 뱉는 숨과 목소리에는 조성이 없었다. 이후로 의도치 않은 침묵이 흘렀다. 하필 직전에 빵을 몽땅 몰아 입에 우겨넣은 탓에 즉흥적으로 발발한 대화가 정상적으로 구조화하는 데에는 적잖은 무리가 따른 것이었다. 1, 2, 3. 고장 난 기계마냥 멈추어 있었던 입을 빠르게 움직였다.

 

   트리스탄이 보기에, 상대는 무엇인가를 입 안에서 연신 크게 짓씹고 있었기 때문에 적당한 반응이 어려워보였다. 미어터질 듯 불룩한 볼이 빠르게 연산했다. 결과 값을 목구멍 뒤로 우겨넣기에는 아직 무리가 따랐지만, 어떻게든 해내고는 눈을 바쁘게 깜박였다. , 하고 급히 잔기침이 비어 나왔다. 다행히 트리스탄의 느긋한 시선은 상황에 따라 기꺼이 인내할 줄 아는 것이었으므로 아직까지 상대의 부스스한 흰 머리에 고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다시 한 번 기침을 하며 눈을 굴렸을 때는, 조금쯤은 측은함을 담아 봐 주었다. 내가 좋지 않은 때에 말을 건 것 같네. 트리스탄은 상대가 온 힘을 다해 기침을 참느라 큰 몸을 구부정하게 말아 앉아있는 낡은 테이블에 손끝을 디뎠다. 질 낮은 종이의 감촉이 느껴졌다.

 

   Ish. 어지럽게 낙서가 되어있는 오선지의 맨 아래에 적힌 것을 쉽게 주목했다. 그것을 알았는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이 고개를 얼른 끄덕였다. 비슷한 단어로 사람, 이라는 뜻이 있다는 것을 스치듯 기억해냈다. 이쉬는 몇 번 헛기침을 더 하다가 물을 들이켰다. 구경해도 돼? 그의 손은 이미 종이의 구석을 잡고 눌러 낱장을 세고 있었다. 콜록, 트리스탄은 긍정적인 대답을 들은 것이라 여기고 오선지를 들어올렸다. 구멍을 뚫은 낱장들을 모아 끈으로 엮은 듯 했다. 다만 매듭의 고리가 실제 양보다 훨씬 느슨하여 더욱 비루하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자주 매듭을 풀고 묶는 모양이었다. 대체로 통상의 시에 선율을 붙인 것이다. 흐음. 그는 우선 의미를 알 수 없는 소리를 냈다. 이런 거 좋아하나.

 

   별로,

 

   ", 좋아하지, 않아, ."

 

   그 짧은 문장을 들으며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미소 짓는 이쉬의 눈썹이 내려앉았다. 달아올랐던 얼굴은 열이 가라앉은 듯 했다. 어색하고 머쓱해하는 것을 넘어 흡사 울기 직전의 모습 같기도 하고, 내심 저것이 버릇인가, 싶었다. 대꾸가 없으니 슬쩍 눈짓으로 제가 가지고 다니는 것을 가리켰다. 생각이. 많아지면. 하는. 것이니까요. 그는 그렇게 토막 내어 말한 뒤 숨을 몰아쉬었다. 트리스탄에게선 희미하게 가죽 냄새가 났다. 평범한 비누 냄새 또한 맡을 수 있었다. 이쉬는 후각이 예민한 편이었다. 굳이 그가 인외, 라는 점을 제할지라도. 별다른 의미 없이 코끝을 찡긋거렸다. 낮의 햇살이 매달린 밝은 잿빛 머리카락이 문이 여닫힌 사이로 들어온 밤바람에 가라앉았다.

 

   "습관이든 취미든, 무엇인가를 하는 것은 좋은 거라 생각해."

 

   트리스탄은 담백하게 말했다.

 

   그럼 가볼게.

   그랬더니, 그는 또 울상으로 웃는 것이었다.

   자리를 떠나며 트리스탄은 따뜻한 차 한 잔을 떠올렸다. 여과가 덜 된 탁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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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llill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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