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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쉬하이드] 소동

IllillIll 2018. 1. 28. 20:27

170131 소동 

 

 

   보름, 소동이 있었다.

 

   지금부터 서술할 이 사달의 전말에는 상당히 많은 요소들이 엉키어있었다. 사실, 무엇이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꼬집어 말할 수 없는 노릇이다. 누군가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모두가 운이 나빴다고 할 것이다. 또 다른 누군가는 조금 더 재미있을 수 있었는데 모자라 아쉽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달의 축복으로 인해 거대하고 흰 늑대로 변할 수 있는 그는 달랐다. 그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푹 쉬며 자신의 잘못이라고 솔직하게 시인했다. . 분명히 말하지만, 결코 겸손 따위는 아니고, 그는 실제로 이 소동의원인 제공자들 중 하나였다. 좋은 의미이든 나쁜 의미이든 유력인사라는 말이다. 어쨌든 그는 꽤 시간이 흐른 이후에도 이 소동을 떠올릴 때마다 은근한 두통을 느끼고는 했다. 가끔은 배가 아팠다.

 

   그날따라 달은 유난히 둥글었다. 작은 유리구슬 같기도 하였고, 이쪽을 뚫어져라 보는 무언가의 눈동자 같기도 하였다. 그는 그것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코끝에 달빛이 물감마냥 묻어났다. 하지만 곧 그림자 안으로 몸을 숨겼다. 동행하는 이들 중 피가 섞인 이가 있었다. 으레 그런 이들을 경시하는 자들도 있었으나 그는 왜 그래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기에 상관하지 않았다. 다만, 보름은 확실히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어둠과 그림자를 밟아 걸으며 함께 부둣가로 향했다. 그리 멀지 않아 바람에 소금기가 묻어났다. 그들의 임무는 고가의 거래물품을 수령해오는 것이었다. 아편.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으나 정확히 어째서 쓰는 것인지는, 솔직히 잘 몰랐다. 고통을 잊게 해주는 걸까. 아니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해주는 걸까. 그들은 험상궂게 생긴 인간에게서 물품을 넘겨받고 그것을 품에 안았다. 셋으로 나누어 하나씩 가졌다. 이대로 가져가기만 하면 되었다. 데네브로.

 

   여기서 두 번째 유력인사가 등장한 것은, 질 낮은 우연이라고 하기엔 지나치리만큼 개연성이 짙었다.

 

   진짜 구경만 할게요. ? 궁금하단 말이에요. , 아편은 본 적 없고.

 

   클레멘타인과 아울러 빛을 푹 퍼낸 듯한 곳에서 잘 닦인 구두부터 시작해 모습을 드러낸 디트리히가 눈을 호로 접으며 해사하게 웃었다. 이쉬는 한 조각 의심도 없이 잘 보관되어있던 아편덩이 하나를 꺼내들었다. 상대가 망할 놈의 런던 절식회인지 미식, 뭔지의 회장이라서가 아니다. 그 옆에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여 서 있는 어리광쟁이 아가씨를 동생처럼 돌보고 있기 때문도 아니다. 그는, 이쉬는, 그가 정말 '보기만' 할 줄 알았다. 그렇게 철썩같이 믿고 있었다. 믿었다, 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그렇다. 그 표현이 조금 더 적당하겠다. 그러므로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던 클로드와 진이 그를 돌로 쳐 기절시키거나 혹은 온 힘을 다해 깔아뭉개지 않은 것은 끔찍한 실책이었다.

 

   리지, 뛰어! 계획대로 아편을 갈취하는 데 성공한 디트리히가 앞서 훌쩍 도약했다. . 텅 비어버린 자신의 손을 멀거니 바라보던 이쉬의 고개가 들린 것도 거의 동시에 일어난 일이었다. 조금 더 빠른 것은 모처럼 의욕이 충만한 진이었다. 그 다음은 모두에게 칭찬을 받고 싶은 클로드였다. 제가 거나하게 벌인 판 덕에 뛰쳐나간 두 동행인들에게 자, 잠깐하고 손을 뻗어보았으나 이미 모두가 흩어져 미로 같은 부둣가의 골목 안으로 사라져버렸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그래도 그럭저럭 감쪽같이 수습이 가능한 지경이었다. 하지만 아편의 행방이 묘연해진 마당에 카나리 워프에 있던 거의 모두가 간과하고 있던 한 가지 사실이 있었다.

 

   재차 언급하자면, 오늘은 보름이었다.

 

 

* * *

 

 

   기왕 이렇게 된 거 바래다주실래요?

 

   아이구, 공격을 피하다가 허리를 삐끗했나 봐. 좀 타도 돼요?

 

   아이, 한 번만 타면 안 돼요? 이쉬 씨? 저기요, 이쉬 씨? 늑대는 흰 꼬리를 휘둘렀다. 흡사 일생에 일절 도움이 안 되는 파리를 쫓는 듯한 행동이었다. 육구가 외곽으로 난 흙길을 밟을 적마다 적잖은 무게가 실린 발자국이 패였다. 그의 등줄기를 타고 밝은 달빛도 물리지 못하는 어둠이 흘렀다. 지금은 그 위를 작고 마른 소녀가 덮고 있었다. 최대한 달을 피해 걷는 중이었지만 혹시나 하여 위로 이쉬의 코트를 덧씌웠다. 클레멘타인이 본의 아니게 낸 상처들은 잠시 걷는 동안 모두 아문 상태였다.

 

   디트리히는 옅게 핏물이 밴 흰 털을 보다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궁금한 게 있는데요, 이런 모습일 때 털이 더러워지면 핥고 그러십니까? 아뇨. 이쉬 씨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요. 아뇨. 저기, 제 말은, 핥는 분들도 계시냐 이거죠. 피치 못할 상황에서. 아니, 라이칸 분들을 집에서 기르는 애완견 취급 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만. 잠자코 들어주던 늑대가 몸을 떠밀자 발을 헛디딘 디트리히가 휘청거렸다. 평탄한 길이 아니라 갑판이나 지붕 위였다면 필시 화려하게 망신살을 뽐냈을 것이리라.

 

   디트리히 씨. - 부탁해요. 리지를.

 

   디트리히가 중심을 잡고 몇 걸음 더 걷자 늑대는 조용히 말했다. 젊은 뱀파이어는 어깨를 한번 으쓱해 보이고 부탁을 받아들였다. 여기서 더 가는 것은 조금 꺼림칙한 일이었다. 둘 모두에게. 정확히는 둘이 속한 곳을 일컬었다. 달빛이 날의 햇살처럼 강했다. 늑대는 달을 한 번 훔쳐보고는 그들이 아주 안보일 순간까지 자리를 지키며 배웅하였다. 멀어지는 것은 누구에게나 쉬웠다. 간극을 좁혀 가까워지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인 것처럼.

 

   어디선가 캐러멜이 타는 냄새가 났다. 하얀 늑대는 몸을 돌려 왔던 길을 거슬러 올라갔다. 자신을 기다리는 자들이 있다. 당장 돌아가야 할 곳은 그곳이었다. 다 괜찮겠지. 전부 다. 문득 막연하고 안일한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자신답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늑대의 텅 빈 등을 바람이 쓸어내주고 사라졌다. 그는 달이 주시하는 런던의 밤 안으로 몸을 던진다. 다시 고요가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