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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쉬하이드] 멸실환

IllillIll 2018. 1. 28. 20:20

170119 멸실환

 


 

   글쎄, 웬 들개가 죽어있었단 말이야.

 

   돈을 쓸 줄 모르는 공장장에게서 돈 몇 푼을 받고 석탄을 나르는 일을 하는 헨리는 수레를 잠시 세워두고 땀을 훔쳤다. 그 말을 들은 토마스는 들개가 죽은 것이 뭐 대수인가, 라며 그를 비웃었다. 저 어수룩한 양반이 할 소리가 없기는 없어서 쓸데도 없는 소리를 하는 것이다. 간밤에 멀쩡한 사람이 죽어나갔다고 해도 나는 놀라지 않을 자신이 있단 말요. 그런데 그 놈의 크기가 꽤 컸어. 여기저기서 밥을 잘 얻어먹은 놈이었나 보오, 더 이상은 귀찮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우리 일이나 합시다. 오늘 잔업을 채우려면 밤늦게까지 움직여야 할 판이오. 털이 하얗더라고. 엄청. 깨끗했어. 이봐, 이슬이라도 맞았으면 말이야, 얼룩덜룩하지 않았겠나? 토마스는 미간을 좁혔다. 주인 없던 것이 아닌 게 아뇨. 누가 키우던 게지. 그런가, 하고 소심한 헨리는 대강 수긍했다. 동료의 퉁명스러운 대꾸들을 듣다보니 문득, 어젯밤 집으로 돌아갈 적에 본 것은 들개가 아닌 것 같다는 확신이 불현듯 들었다. 그것은 몸집도 컸고, 털은 반질거렸으며 누운 모양새가 반듯했다. 누군가 일부러 누인 것이 틀림없었다. 그것은 들개가 아니었다. 그럼 뭐란 말인가?

 

 

* * *

 

 

   개비Gabby. 그녀는 그의 부름에 돌아보았다. 너무 위험한 곳은 가지 마. 특히 그 숲은. 진심어린 그의 충고에, 가브리엘은 매력적으로 굽이치는 적갈색 머리카락을 과장된 자세로 귀 뒤로 넘기며 씩 웃었다. 허리를 세우고 그를 향해 한 걸음 한걸음 씩 우아하게 걸어온 그녀는 테이블 위에 털썩 걸터앉아 다리를 꼬았다. 부츠 끝에는 흙이 조금 굳어있었다. 엊그제 또 숲 근처까지 나간 것이 틀림없었다. 그녀의 부츠 끝에는 작은 나이프를 넣을 수 있는 포켓이 있었다. 첫째 용도는 호신을 위한 것이었고, 둘째 용도는, 가죽 등에 눌어붙은 기름을 긁어내기 위함이었으나 그 용도로는 거의 쓰이지 않았다.

 

   "이쉬."

 

   ? 하고, 그는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 너는 내가 만난 몇 안 되는 라이칸 중에 가장 바보 같은 라이칸이야."

 

   그러니까, 두 명 중에 말이야. 그렇게 말한 그녀는 생긋 웃었다. 호선으로 접히는 눈가에 작은 흉터가 있었다.

 

   "넌 내가 쏜 총에도 맞을 뻔 했지. 바보 같은 이쉬하이드. 내가 지옥에서 올라온 가브리엘인 줄도 모르고."

   "네 이름이 가브리엘이 아니라 루시퍼였다면 더 어울렸을 법한 말이네."

 

   . 여유롭게 코웃음을 쳤다. 그녀는 사냥꾼이었다. 산 어귀에 있는 부모의 목장을 지키기 위해 하나 뿐인 딸은 선뜻 머스킷을 들었다. 가브리엘은 무엇인가를 가늠하는 듯 턱을 들고 눈을 가늘게 떴다. 등에 메고 있었던 것을 내려놓고 끝을 천으로 문질러 닦았다. 거뭇한 가루가 묻어나왔다. 슬슬 맛이 가고 있네. 조만간 손을 좀 봐야겠어. 직접 고치는 게 나을까. 잘만 하면, 할 수 있을 것 같단 말이야. 어떻게 생각해? 이쉬는 어깨를 으쓱였다. 원래 맡기던 곳에 맡기는 것이 낫지 않을까. 개비, 네 총을 손봐주는 마담과 무슈는네가 그 총에게 무슨 끔찍한 짓을 저질렀는지 결국은 다 알게 되실 걸. 물론, 널 못 믿는 것은 아니지만. 그녀가 바쁘게 움직이던 손을 멈추고 눈썹을 추켜올리자 얼른 덧붙였다.

 

   "나는 네 친구인 걸. 가브리엘."

 

   그는 마지못해 양 손을 들어보였다.

 

 

* * * 

 

 

   어린 형제는 다른 형제들처럼 달을 닮았다. 마지막 자손을 낳은 어미는 그에게, 너는 하현이며, 어린 형제는 보름이라고 하였다. 어린 형제의 털빛은 유난히 밝고 순결하게 희었다. 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찬 숲의 틈으로 비추는 달빛은 늘 형제를 따라다니는 듯 했다. 아델. 그 이름을 선망했던 그믐의 누이가 목소리를 높여 붙여준 이름이었다. 제 입술로라도 누군가를 아델, 이라 부르고 싶었던 것이다. 아델. 아델. 다행히 그 이름은 받아들여졌으며, 모두가 그를 아델이라고 불렀다. 한동안은 숲에서 가장 어린 형제를 이르는 말이었다. 하얗게 익은 여름의 보름달을 이르는 말이었다. 처음으로 눈을 뜨던 날 밤에는 소리 없이 여우비가 내렸다. 의심할 여지없이 바다처럼 푸른 눈동자였다.

 

   아델.

 

   그는 어린 보름을 무척이나 아꼈고, 사랑했다. 젖을 일찍 떼자마자 형제를 돌보는 것은 대체로 그의 몫이었다. 철이 덜 든 배다른 누이는 수사슴이나 꽁지깃이 예쁜 산새를 맨발로 좇기 바빴고, 며칠씩 안보이면 으레 잔뜩 젖은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나타나곤 하였다. 그러니까, 아직 몸조리가 필요한 어미와 함께. 모녀는 사이가 각별했다. 이를테면 어디선가 나란히 지독한 감기에 걸려오는 방식으로, 때때로 그것은 그를 난감하게 했으나 제법 유쾌한 풍경이었기에 그는 그것 또한 소중하게 여겼다. 둘을 기다리며 어린 형제를 제 무릎에 앉히고 언덕에서 몇 시간씩 별바라기를 했다. 은하수는 하늘에 엎질러진 물 같았다. 아델. 아델. . 새 별이 떴어. 저 별에 네 이름을 붙여줄게.

 

   "그럼 누가 인정이나 해 준대?"

 

   작은 꼬마는 품에 기댄 채로 볼멘소리를 했다.

 

   ", 둘만의 비밀이랄까."

   "그게 무슨 소용이야."

 

   아하하. 그러네. 이쉬는 울듯이 웃었다. 이쉬, 저 별은 남쪽에 있잖아. . 저 별을 따라가면 숲을 건널 수 있는 거야? . 호기심으로 가득한 푸른 눈이 바쁘게 깜박였다. 그곳엔 뭐가 있어? 작고 흰 손가락이 우거진 숲을 가리켰다. 숲이 바람결에 빗기며 일제히 우수수 소리를 냈다.

 

   "숲 너머에는,"

 

   다음에 소개시켜줄게. 그는 몸을 들썩이며 고쳐 앉는 어린 형제의 머리에 입을 맞추었다.

 

 

* * * 

 

 

   넌 최악이야, 이쉬하이드.

   사냥꾼은 이를 악물고 울음이 비집고 나오려는 것을 참았다. 좁은 어깨가 가늘게 떨렸다.

 

   그 날은 비가 내려서 달이 보이지 않았다. 밤하늘이 몹시 흐렸다.

 

   모두 네가 저지른 짓이야.

   사냥꾼은 흰 늑대를 끌어안았다. 사냥꾼의 눈에서는 기어코 눈물이 터져나왔다.

 

 

   그대로 붉은 물이 번졌다. 영원히 모든 것을 뒤덮었다.